무역을 열고 관리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7월 26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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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블로그

평균 해발 고도 1천6백미터의 베트남 서부 고원지대 럼동 성에 위치한 (이하 ‘꺼우덧 그룹’)은 2012년에 창립되어 현재 14가구의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다. 인근 닥농 성의 의 한 그룹으로, 공정무역 커피농장의 면적은 약 17헥타르이며 생산량은 약 60톤에 달한다. 현재 베트남 유일의 공정무역 아라비카 커피 생산지이며, 하노이의 공정무역 사회적 기업인 ‘그린페어 트레이드’의 도움을 받아 커피를 수출하는데 성공했고 한국의 ‘아시아 공정무역 네트워크’와도 거래하고 있다.

▲ 베트남에서 커피와 차 생산지로 유명한 꺼우덧. © 아맙

베트남 유일의 공정무역 아라비카 커피 생산지에서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대를 그리워하네.”

한 조합원 아주머니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베트남의 커피 노래 한 소절을 자그맣게 불러주었다. 노래 제목은 “쓰디쓴 커피”. 커피에 담긴 사랑과 이별에 관한 노래라고 했다. 베트남 커피 재배 농부들의 아픈 역사 이야기를 듣고 난 무역을 열고 관리 뒤였기 때문일까, 노래가 구슬프게 들렸다.

베트남은 전세계 커피 수출 2위국이다. 현재 한국이 수입하고 있는 커피의 24%가 베트남산이며, 베트남 커피의 95%는 로부스타 커피다. 은 현재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공정무역 아라비카 커피를 생산한다. 2014년부터 의 커피를 수입해온 한국의 ‘아시아 공정무역 네트워크’는 올해 고소한 견과류의 향과 부드러운 쓴맛이 일품인 꺼우덧 지방의 G1등급 아라비카 커피를 블랜딩 해서 “페어데이 5.3.2 블렌드” 커피를 출시했다.

로부스타 커피를 생산하던 농부들이 공정무역 아라비카 커피를 재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공정무역과 더불어 그들의 살림살이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된 것일까. 커피 맛은 몰라도 좋은 커피 생두는 냄새만 맡아도 안다는 그들, 커피 열매 한 알 한 알에 정성을 기울이며 공정무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커피농부들의 이야기를 인터뷰가 전한다.

구수정(아맙 베트남 본부장, 이하 ‘수정’): 베트남에서 달랏은 고품질의 커피, 차, 과일, 채소 등의 생산지로 유명하죠. 달랏 지역 중에서도 꺼우덧은 오래 전부터 커피와 차 산지로 유명한 곳이라 들었습니다.

보 칸(꺼우덧 그룹 조합장, 이하 ‘칸’): 꺼우덧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 때 지어진 이곳의 오래된 지명입니다. 지금의 달랏 지방의 쑤언쯔엉, 쑤언터, 짬한 등 3개 사(xa, 한국의 읍면 단위)를 아우르는 지명이죠. 예로부터 꺼우덧이 커피와 차로 명성이 자자해 세월이 흘러도 그 이름은 남아 있어요.무역을 열고 관리

꺼우덧 역사는 식민지를 거친 베트남 커피의 역사

수정: 꺼우덧의 명성에 걸맞게 현재 은 베트남 유일의 공정무역 아라비카 커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꺼우덧 지방의 커피 맛은 어떤가요? 꺼우덧 커피 자랑을 좀 해주세요.(웃음)

칸: 사실 저 같은 농민이 커피 맛을 어찌 알겠어요. 커피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죠.(웃음) 꺼우덧은 평균 해발 1천6백미터가 넘는 고산 지대로 1년 중 아홉 달 동안 안개가 낍니다. 땅은 적토 또는 황토의 현무암 토양으로 유기질 함량이 높고 배수가 잘 돼 커피나무의 생장에 좋지요. 연평균 기온도 14~23°C로 다른 열대 지역에 비해 연중 시원한 날씨를 유지하고, 안개가 많은 밤 날씨는 커피나무에 습기를 제공해 나무가 안정적으로 꽃과 커피 체리를 맺도록 도와줍니다.

아라비카 커피나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기후와 지형을 가지고 있어서, 1세기 전부터 프랑스인들이 이곳에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던 거죠. 그때부터 아라비카 커피나무가 이 지역에서 적극 개발되었고, 지역민들의 생활을 유지하는 중요한 작물이 되어왔어요. 커피 전문가들에 의하면 꺼우덧 커피는 천연의 단맛과 함께 부드러운 쓴맛, 그리고 고소한 견과류의 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 (꺼우덧 지속 가능한 공정무역 커피 그룹) 조합장 보 칸. © 아맙

우리 그룹의 농민들은 아직 기계화되지 않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간단한 농기구와 손으로 커피를 수확하고 있어요. 특히 아라비카 커피는 커피콩 한 알 한 알에 정성을 들이고 있지요. 우리 꺼우덧 커피는 첨가물이 전혀 없는 순수한 커피, 소비자들이 믿고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커피라고 자부합니다.

수정: 인근의 럼하 현에는 베트남 북부에서 이주해온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꺼우덧에는 중부 꽝아이 성 출신 분들이 많더군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요?

칸: 저의 아버지도 꽝아이 성 사람이에요. 프랑스 식민지 시대 때 아버지는 12살의 나이에 고향을 떠나 플랜테이션 노동자가 되어 이곳 럼동 성의 꺼우덧에 왔어요. 당시 이곳에는 대규모 프랑스 플랜테이션 농장이 있었는데, 아라비카 커피나무가 자라기에 가장 적절한 기후와 지형을 가진 이곳에 차와 커피를 섞어 심었죠. 베트남 중부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하던 꽝아이 성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이주해 이곳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했습니다. 지금도 꺼우덧 주민의 약 50% 이상이 꽝아이 성 출신 사람들이에요.

이 부근에는 아직도 그때 지어진 프랑스식 주택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프랑스인들은 베트남 노동자들을 집단수용소 같은 곳에서 살게 하면서 일을 시켰다고 해요. 또한 기차 길을 내기 위해 1킬로미터가 넘는 굴을 파게 했는데, 가혹한 강제 노역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등 악명이 높았죠. 이처럼 이곳은 100년의 아픈 커피 역사를 품고 있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은 ‘꺼우덧 커피의 역사는 베트남 커피의 역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식민지 시대에는 아이들에게까지 노예노동을 시키던 유럽인들이 이제 와서 공정무역을 하자며 우리에게 아동노동과 강제노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고요. (웃음) 꺼우덧에서 최초로 베트남 공정무역 커피가 무역을 열고 관리 시작된 것도 이곳의 커피 역사와의 인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30년 경력 커피농사꾼, 공정무역을 전파하다

수정: 처음에 공정무역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칸: 저는 열 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커피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제가 커피와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었네요. 저는 커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곤 했는데요, 특히 럼동 성 인근에서 커피 관련 세미나나 포럼이 열리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어요. 생업을 작파하고 2년 동안 커피학교에 다니기도 했죠.

▲ 손으로 일일이 결점두를 골라내고 있는 모습(위), 조합장 칸과 조합원들과의 만남(아래) © 아맙

그런 과정에서 하노이의 사회적 기업 무역을 열고 관리 를 통해 인근의 닥농 성에서 공정무역을 하고 있는 를 만나게 되면서 공정무역을 알게 되었어요. 가난한 나라의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가격을 보장해주는 공정무역의 취지에 마음이 움직였죠. 그 길로 마을에 돌아와 공정무역에 대해 무역을 열고 관리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어떤 유기비료를 써야 하는지, 어떻게 토양을 보호하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등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죠.

커피 재배부터 수확까지 그리고 워싱, 펄핑, 건조, 탈각 등 커피 공정의 전 과정을 이해하고 더 좋은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커피 공부를 멈추지 않았지요. 이웃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공정무역을 알리고 항상 “환경, 환경”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큰 무역을 열고 관리 딸이 대학에 진학을 했는데요, ‘대체 그 놈의 환경이 뭐길래’ 싶어 환경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하하.

수정: 정당한 가격을 보장하는 문제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칸 씨를 공정무역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칸: 보통 농민들은 중간 상인을 통해 커피 생두를 판매해요. 아시겠지만 커피는 가격 변동이 정말 극심한 작물 중 하나예요. 오늘 1킬로그램 당 가격이 70센트였는데 내일은 60센트, 모레는 또 50센트로 급락하는 경우도 다반사지요. 농민들은 시장 가격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 중간 상인이 쳐주는 값대로 생두를 넘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중간 상인들이 품질을 이유로 터무니없이 가격을 후려치기도 해요. 그동안 농민들은 이래저래 불리한 입장을 감수해야 했어요. 중간 상인의 보이지 않는 농간과 극심한 가격 변동에 시달리며 늘 마음을 졸이며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공정무역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커피 가격 때문이에요.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고 최저 가격제가 있어서 일반 시장보다 훨씬 안정적인 조건 속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죠. 커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는 시장 가격이 공정무역 가격보다 더 높을 때도 있지만, 우리는 지속 가능한 생산과 판매를 약속하는 공정무역을 선택했습니다.

유기농사로 수확량 줄어도, 농민들은 공정무역을 원해

수정: 현재 에는 몇 명의 조합원이 참가하고 있나요? 농장 면적과 생산량 등의 현황도 궁금합니다.

칸: 현재 그룹에는 총 14가구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체 면적은 16.7헥타르, 총 생산량은 62.8톤 정도 됩니다. 작년에 이중 약 10톤을 공정무역으로 수출했고, 나머지 50톤은 호치민시나 하노이 등의 일반 시장에 판매했습니다. 공정무역을 시작한 지 겨우 2년밖에 되지 않고 규모도 작아서 아직 뚜렷한 성과는 보이지 않고 판로도 개척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공정무역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더불어 그룹 가입에 대한 문의도 늘고 있어요.

화학비료 대신 유기농 비료를 쓰면서 커피 수확량은 줄었지만 조합원들은 여전히 공정무역을 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30년간 커피 농사를 지어 보니 태풍 피해나 병충해로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일만 아니라면 커피 작황보다는 커피 가격이 농민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줘요. 과거에는 눈앞의 이익을 좇는 데 급급했지만 이제는 농민들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수정: 그룹은 조합원들의 안정적인 커피 농사를 위해 어떠한 지원을 하고 있나요?

칸: 은 조합원들이 등록한 커피농장에서 생산된 커피를 전량 구매하고 있고요. 시장 가격보다 최소 3천동(0.14센트) 이상 더 높은 가격을 보장합니다. 그리고 공정무역의 원칙에 준해 친환경 농법, 비료 및 농약 사용량, 농사일지 기록 등과 관련된 교육을 진행해요. 또한 고품질 커피를 재배하기 위한 기술과 노하우도 전수하고 있죠. 시장 가격 등의 정보도 공유하고요.

최근에는 호치민시 경제 대학교의 사이프(SIFE, Students in Free Enterprise)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들이 커피의 품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경작법, 가공법 등을 조합에 지원해주기도 했어요. 요즘에는 커피의 품질이 중요합니다. 예전엔 농부들이 생산량에만 급급한 나머지 품질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죠. 커피 열매를 수확할 때도 익은 것 설익은 것 구분 없이 가지를 죽 훑어 내리곤 했는데, 지금은 잘 익은 놈만 고르기 위해 한 알 한 알 주의를 기울여 열매를 따지요. 소비자들의 커피 취향이 날로 고급화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고품질의 생두를 생산하는 것이 결국 높은 판매 가격으로 이어져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커피 농사일도 고된데 품질까지 고민하려니 이래저래 농부들은 고달프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의 자녀들은 이 커피 덕에 맘껏 공부도 할 수 있는 거겠지요.

생산한 커피 전량이 공정무역 소비자 손에 전달되길

수정: 현재 조합의 운영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리고 장차 그룹을 어떻게 키워 나갈 계획인가요?

칸: 우리 그룹은 의 한 그룹으로 공정무역을 함께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규모를 더 키워 독립된 합작사가 될 목표를 갖고 있어요. 그땐 꺼우덧 합작사가 독자적으로 공정무역 인증도 추진할 계획이고요. 아직까진 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간단한 농기구와 손으로 땅을 개간하고 작물을 키우는데, 농민들이 힘을 모아 더욱 건실한 조합을 만들고 장기적으론 커피 재배만 아니라 가공, 수출까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년에는 생두를 크기 별로 분류하는 스크리닝 작업과 수출 대행을 다크만(Dakman)이라는 회사에 맡겨 진행했어요. 사실 그룹에서도 일일이 손으로 철저히 스크리닝 작업을 하지만,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 가공회사를 거쳐야만 하거든요. 조합의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대행료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죠.

한때 꺼우덧은 세계 최상의 모카커피 산지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높은 생산량과 환경 적응도 때문에 대부분 카티모르 종으로 대체되었지만, 최근 과거의 명성을 되살려 다시 모카를 심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가격 면에서도 모카와 카티모르는 최대 3배까지 차이를 보이죠. 우리 조합에서도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공정무역 모카커피 생산을 점점 늘려 나갈 계획입니다. 공정무역 3년차에 접어드는 올해에는 무엇보다 우리 조합에서 생산한 커피 전량이 공정무역 소비자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무역을 열고 관리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
23일 '전국경찰서장 회의' 제안 "일선 경찰 의견 반영"
"경찰국 신설, 법·절차·시기적으로 문제 있다" 주장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유튜브 영상 캡처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방안이 다음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 당장 다음달부터 실행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경찰 총경급 간부들이 이를 저지하고 나섰다. 이들은 23일 '전국 무역을 열고 관리 경찰서장 회의'를 열고 경찰국 신설과 관련한 대응 방안 논의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경찰 조직이 행안부의 지휘 통제를 받는 중대한 변화인데도 일선 경찰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회의를 제안한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은 2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경찰국 설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우선 법적으로부터 문제가 있다"고 꼬집고 나선 류 서장은 "먼저 법적으로 보면 행안부 장관의 업무에 경찰 치안에 관한 사무가 없는데, 자기 일이 아닌 일을 가지고 대통령령을 만들고 부령을 만들어서 경찰을 장악하고 통제하겠다는 건 잘못된 이야기"라고 각을 세웠다.

그는 절차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류 서장은 "경찰에 관한 중요한 결정은 국가경찰위원회의 의결사항"이라며 "그것이 완전히 무시된 상태에서 법적 근거가 없는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라는 족보도 없는 그런 자문위를 가지고 두 달 만에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행정절차법상 법령을 만들 때는 한 40일 정도의 의견수렴 기간을 거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상에 규정된 내용인데 그것을 지난 15일에 발의를 해서 휴일 포함해 5일 만에 의견수렴을 했다는 거는 의견수렴을 하려는 의사가 없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희근(오른쪽) 경찰청장 후보자가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전국경찰직장협의회(직협) 대표단 간담회에 참석해 자신을 응원하는 직협 관계자와 악수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또한 시기적인 문제도 짚었다. 그는 "현재 우리 경찰청에는 경찰청장이 없다. 다만 경찰청장 후보자가 있는데 그 후보자의 불안정한 지위 상태에서 경찰 내부의 의견수렴 등을 못하는 민감한 시기에 두 달 만에 (결정을) 끝내는 것은 문제"라며 "경찰국 신설은 논의가 중지돼야 하고, 좀더 숙고를 해야 된다"고 피력했다.

실제로 현재 경찰청장이 공석인 가운데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21일 전국경찰직장협의회(직협) 대표단과 간담회를 가졌다. 직협은 경찰 노조격인 단체로 행안부의 경찰국 신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와중에 전국 경찰서장 회의는 직협 지휘부가 주재하지 않는 회의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류 서장은 최근 단체 대화방까지 만들어 서장들의 참석을 독려하고 있다. 전국 총경은 6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는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류 서장은 "우리 경찰은 국민의 경찰이다. 국민에게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국 신설이 되면 인사권 지휘권이 정치권력을 가진 장관에게 집중된다"며 "그러면 경찰은 더 이상 국민을 바라보지 않고 장관을 바라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에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우리 경찰의 잘못이 다시 반복될 수가 있다"면서 "제발 경찰국 신설 문제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이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란다. 국민인권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 물고 물리는 이념 공방전

그림 1은 20세기 초에 영국에서 제작된 정치포스터다.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가운데 정부가 어떤 정책기조를 채택할 것인가가 선거의 핵심 쟁점이었던 시기다. 환하게 빛을 받고 있는 자유무역 가게 진열대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가득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칙칙한 빛깔의 보호주의 가게 진열대에는 먹거리의 종류와 양이 적으며, 가격이 비싸다. 진열대 유리창에는 거미줄이 가득하다. 심지어 주인이 신은 신발이 터져 발가락이 삐져나와 있다. 디테일에 신경을 참으로 많이 쓴 포스터다. 당시 정당들은 자유무역 혹은 보호무역이 유리하다는 포스터를 통해 유권자의 마음을 사려고 무진 애를 썼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견해는 시장개방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강조한다. 관세를 낮추면 해외에서 상품이 낮은 가격으로 들어와 소비자에게 이득이 된다. 또 다른 국가들이 시장개방을 하면 국내 생산자들이 수출을 늘리고 이윤을 확대할 수 있다. 이렇듯 자유무역은 국민이 더 큰 파이를 누리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견해는 해외 상품의 대량 유입이 국내 산업을 위축시켜 실업자를 양산하고 노동자의 소득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일부 산업만 시장개방의 이익을 향유할 수 있으므로 국내 산업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제도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유치산업보호론을 주장한다.

그림 2 반(反)곡물법동맹의 시위 모습, 1840년대.

산업혁명 후 무역기조 변화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의 일이었다. 그 이전에는 어느 나라에서건 금과 은의 획득을 늘려야 국부가 증강된다는 중상주의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수출은 장려하고 수입은 억제하는 보호주의 정책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8세기 후반 영국이 산업혁명을 경험하면서, 그리고 19세기에 여러 국가들이 뒤이어 공업화를 진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주장이 대두해서 보호주의를 주장하는 기존의 관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양측의 대립이 고조되면서 선택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결국 국가별로 평화적 혹은 폭력적인 과정을 통해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중에 결정이 이루어졌다.

먼저 영국을 살펴보자. 1815년 나폴레옹전쟁이 끝나자 곡물가격이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자 의회는 곡물가격이 아주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수입을 금지하는 무역을 열고 관리 곡물법(corn law)을 제정했다. 의회의 다수파였던 지주계층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주도한 입법이었다. 점차 성장하고 있던 자본가계층은 1838년 반(反)곡물법동맹을 결정해 대중시위를 주도하고 의회에서도 반대운동을 벌였다. 그림 2는 1840년대 초 런던에서 벌어진 곡물법 반대시위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크해트에 정장을 갖춘 자본가들 옆으로 수수한 옷차림의 노동자들, 그리고 ‘샌드위치 구호판’을 몸에 찬 아이들이 보인다. 노동계층에게 곡물법은 고물가를 강요하는 악법으로 여겨졌으니 그들 가족이 시위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당연했다.

1846년 영국 정부는 결국 곡물법을 폐지하게 된다. 자유무역의 보호무역에 대한 승리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지주계층의 번영이 경제발전에 필수라고 본 맬서스(Malthus)의 이론이 힘을 잃고, 각국이 생산비가 상대적으로 낮게 드는 상품만 제조해 자유무역을 하면 모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간다는 리카도(Ricardo)의 비교우위론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영국은 주변 국가들이 자유무역에 동조하기를 원했다. 영국의 뒤를 이어 공업화에 들어섰던 프랑스에서도 자유무역주의가 점차 힘을 얻어갔다. 그리하여 1860년 양국 간에 코브든-슈발리에 조약이라는 자유무역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자발적 협정의 결과로 양국의 관세는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공업화가 뒤처진 국가들의 상황은 달랐다. 독일은 전근대적인 경제구조를 그대로 보유한 주변국이었다. 이 후진국의 학자들은 영국과의 자유무역이 독일의 경제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자유무역을 하면 독일은 고급 제품을 수입하고 저가품을 수출하는 경제로 굳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리스트(List)를 비롯한 이른바 역사학파 학자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영국과 독일이 서로 다른 경제발전 단계에 있기 때문에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미국도 아직 공업화의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었다. 남부와 북부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이 미국이 해결해야 할 핵심과제였다. 식민지시대 이래 남부는 농장주들이 플랜테이션에서 흑인노예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경제였다. 대규모로 재배된 면화·담배·쌀 등을 유럽으로 수출하여 이익을 얻는 구조였다. 당연히 유럽과 자유무역을 하는 편이 유리했다. 반면에 북부에서는 상공업이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 유럽국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북부는 보호무역을 통해 국내 상공업이 커갈 공간을 확보하기를 바랐다. 남북의 이해관계는 양립하기 어려웠다. 긴장관계가 점차 고조되더니 마침내 1861년 남북전쟁의 형태로 폭발했다.

그림 3 에드가 드가, 뉴올리언스의 면화사무소 1873년.

중국, 강제로 자유무역 진영에 편입4년에 걸친 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북군의 승리는 보호무역이 미국 경제정책의 핵심 기조로 확정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림 3은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가 1870년대에 그린 뉴올리언스에 소재한 면화사무소의 모습이다. 면화거래상들은 탁자에 놓은 면화의 품질을 살펴보기도 하고 신문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들이 원했던 자유무역주의 시대를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남북전쟁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정부가 보호무역주의를 완강하게 고수했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스스로 무역방식을 결정했던 것은 아니다. 1839년 중국정부가 아편 거래를 중단시키자 영국은 함대를 보내 전쟁을 시작했다.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난징조약을 맺고 중국이 공행을 통해 유지하던 기존의 독점적 무역체제를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중국은 5개 항구를 열고 최혜국대우 조항에 따라 자유무역적인 체제를 수용해야 했다. 하지만 영국의 기대와 달리 난징조약 이후에도 시장개방의 효과가 내륙에까지 미치지 않았다. 그러자 영국은 1856년 프랑스를 끌어들여 2차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다시 패전한 중국은 톈진조약과 베이징조약을 통해 10개 항구를 추가로 개방하고 서구인의 활동범위를 널리 인정하도록 강요당했다. 중국의 자유무역은 철저히 ‘자유롭지 못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19세기 중반은 세계화의 첫 물결이 휘몰아친 시대였다. 국가 간 무역이 늘고 노동과 자본의 이동이 많아지고 정보와 지식의 전파가 빨라졌다. 각국은 무역기조를 결정해야만 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자발적으로 자유무역주의를 택했다. 그러나 독일과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었으며, 중국은 강제적인 방식으로 자유무역 진영에 편입되었다.

1870년대가 되자 세계경제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대불황이 세계경제를 강타했다. 국제 농산물가격이 폭락했고 공업국의 불황이 주변국으로 확산하였다. 이런 위기 속에서 자유무역주의를 고수하기란 쉽지 않았다. 거의 모든 국가가 보호무역주의라는 시대적 급류에 휩쓸렸다. 자유무역주의의 첨병이었던 영국조차도 거센 논쟁에 휘말렸다. 20세기에 들어서도 보호주의의 강세는 계속되었다. 1차 세계대전, 대공황,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보호무역주의는 식민지 블록경제 체제로 더욱 강화되었다. 이렇듯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시대적 조류가 자유무역 쪽으로 바뀌기 시작할 때까지 보호무역주의 속에서 세계화는 긴 후퇴의 시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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