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벌다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5월 5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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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용하는 영어표현 : '시간을 벌다, 손바닥 보듯 잘 안다' 영어로

서로 연관성은 없으나, 각각 개성 만점의, 아주 자주 사용되는 표현들입니다. 외국애들은 이런 말을 영어로 어떻게 말하나 하는 것들도 몇개 포함시켜봤습니다.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시면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이해가 가고 재미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령 우리는 '시간을 벌다' 라고 하는데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들은 '시간을 산다 (buy time)'고 하네요. 이때 time 에 the 같은 정관사를 붙히지 않는다는 것 기억하시구요.. 자, 한번 쭉 보겠습니다.

그녀는 시간을 벌려고 노력했어요 > She tried to buy time.

난 이곳을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있어요 > I know this place like the back of my hand.

이것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 > Could you give me a hand with this ?

그녀를 오랫동안 못 봤어요. (본지 오래됐어요) > I haven't seen her in ages.

몇시에 거기 가야하나요 ? > What time should I be there ?

6시 정각에 거기 계세요 (그리로 오세요) > Be there at six (oclock) sharp.

오늘 포스팅 내용중 특히 중요한 것은 영어로 시간을 벌다 (buy time), 손바닥 보듯 안다 (know something like the back of one's hand) 라는 표현입니다. 영어를 커다란 벽돌 건축물에 비유할 때 그 벽돌들이 서로 온전히 잘 붙어있게 해주는 시멘트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반복'입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세요.

작은 미용실로 연봉 1억을 벌다

나는 한성대입구역 뒷골목 15평 작은 미용실을 8년째 경영하고 있다.
나의 미용실은 작지만 나의 꿈은 작지 않다. 현재 대한민국의 미용실은 넘쳐나고 헤어디자이너도 엄청나게 배출되고 있는 시점에 특별한 블루오션을 만들어 차별화된 경쟁력을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수많은 미용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교육의 힘이다. 대한민국 문맹률은 세계 최고인 1% 미만으로 경제발전이 남다르게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미용실이 성장할 수 있는 구조는 교육의 힘으로 미용지식에 대한 문맹률을 낮추어야 한다. 문맹률을 낮추는 기본은 베이직이며 기본적인 베이직을 연구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쏟고 베이직이 습관화되었을 때 시대 유행을 만들어 가는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고 도와주는 사람 없이 오로지 홀로서기로 시작하였고, SNS를 통해 홍보를 하였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한 결과 열심히 사는 모습을 고객들이 감동을 하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고객이 먼저 알아봐 주는 미용사로 성장하였다. 그렇게 작은 미용실에서도 충분히 연봉 1억을 벌 수 있다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미용실 오픈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경영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미용실을 오픈 하면서 고객을 창출하기 위해서 블로그나, 유튜브, SNS 활동을 하고 다른 미용실과 확실히 차별화를 만들었다. 점점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하드웨어적으로 기술 숙련에 노력을 하고 고객 홍보에 노력한 결과 지금의 작은 미용실이 성공한 롤 모델이 된 것이다. 미용실을 성장시키면 다른 성장의 원뿌리가 될 수 있고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는 근본이 되며 하드웨어적인 부분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 집중 투자를 하여 하드웨어적으로 성장할 때는 결과가 오래 걸렸지만 소프트웨어적으로 실천하면서 아주 빠른 결과물을 볼 수 있었다.
즉 몸으로 하는 일하는 것보다 머리로 생각하고 기록하는 습관은 소프트웨어적으로 성장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시원스쿨 스페인어

[ 많은 돈을 벌다 = 돈을 열심히 벌다 ]인가요? 열심히 -을 하다 라고 할때 많이 하는거라서 동사 뒤에 mucho 쓰는거라고 해서 [ 열심히 일하다 > trabajar mucho ] 라고 쓰이자나요 그런데 돈 벌다에서 [ 많은 돈을 벌다 > ganar mucho dinero] 이렇게 쓰는데 mucho 가 ganar를 꾸며주면 돈을 열심히 벌다도 될수 있는데 똑같이 쓰이나요?

올라! 김정*님!
한국어로는 ‘돈을 많이 벌다’ 라고 말하지만 스페인어에서는 ‘많은 생각하고 벌다 돈을 벌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ganar mucho dinero 라고 사용된 것이죠. 즉, mucho는 ganar가 아닌 dinero를 꾸며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ganar mucho 라고 하면 돈을 버는 뉘앙스에서 ‘많이 벌다’ 와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어요. Trabajar mucho 에서 mucho는 원래 ‘많이’ 라는 뜻이지만 많이 일하는 것이 열심히 일하다고 의역된 것입니다. ^^ 따라서 ganar mucho는 열심히 벌다가 아닌 ‘많이 벌다’와 같은 뉘앙스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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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벌다

2003년 6월, 세 딸을 남겨두고 북한을 떠났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량강도엔 ‘중국에 가서 3개월만 일하다 오면 장사밑천은 넉넉히 벌어올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나는 그 소문의 한 끝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냥 앉아서 굶어죽을 수만은 없다는 결심이었고 딱 3개월만 일하고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울며불며하는 애들과 헤어졌습니다. 당시의 제가 애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란 남은 재산을 탈탈 털어 마련했던 안남미 쌀 7㎏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두만강을 건너 내가 찾아간 중국은 ‘3개월 만에 장사밑천’을 잡기는 고사하고 제 몸 하나 간수하기조차 생각하고 벌다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짐승처럼 팔려 다녀야 했고 중국공안의 눈을 피해 인적 없는 산골짝에서 1년여를 헤매기도 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다보니 집을 떠난 지가 벌써 2년이 되었는데 내 손엔 단돈 백 원도 쥐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인신매매꾼들의 촉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던 시점부터 한국에 올 때까지 2년6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 식당에서 죽기 살기로 일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나를 기다리는 애들을 생각하면 하루 한시가 급한데 이렇게 벌다보면 언제 세 아이를 다 데려올 수 있을까 싶어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고 그래서 들어간 곳이 강남 어느 병원의 간병인 자리였습니다.(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관련없음).

나를 기다리는 애들을 생각하면 하루 한시가 급한데 이렇게 벌다보면 언제 세 아이를 다 데려올 수 있을까 싶어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고 그래서 들어간 곳이 강남 어느 병원의 간병인 자리였습니다.(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관련없음).

얼마간 돈이 모아져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때, 저와 같은 처지에 있던 한 탈북여성을 만났습니다. 내가 북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을 안 그 여인은 대뜸 치마를 내리고 자신의 하체에 생긴 커다란 흠집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돌아간다는 건 미친 짓이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인은, 중국에서 번 돈을 가지고 북으로 갔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설마 죽이지야 않겠지~'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이른 새벽에 보위지도원이 집으로 들이닥쳤고 그 후로 노동단련대와 감옥에서 죽을 고생을 경험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인은 “항문까지 벌어져 다 죽게 된 나는 시체처럼 거적에 말려 감옥 밖으로 던져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이 헤아릴 수도 없다는 이야기까지는 그냥 그러러니 하고 들었는데 “항문은 물론 음부에까지 손을 넣어 숨겨둔 돈이 없는가를 살피고 ‘중국에서 번 돈은 법을 어기고 번 것’이기 때문에 일전도 본인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선 마음을 고쳐먹고 말았습니다.

돈을 빼앗다니, 그럼 내가 이곳 중국 땅에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면서 받았던 수모와 멸시는 무엇으로 보상받을 텐가. 아니, 수모와 멸시는 나 혼자만의 가슴에 꼭꼭 묻어둔다고 해도 이 못난 엄마를 기다리며 몇 날 몇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을 어린 딸애들은 또 어떻게 바라본단 말인가.

고민 끝에 한국행을 결심했고 지도를 펼치고 중국에서 라오스로, 라오스에서 또 다른 3국을 경유해 대한민국으로의 마지막 귀착지인 태국에 도착했습니다.

중국어는 물론 영어 한마디 번지지 못하는 제가 단신으로,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5천 km나 되는 탈출을 감행해 대한민국 영사관에 왔다는 사실을 처음엔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혹시는 가족이, 때로는 남자가 그 먼 길을 에돌아 자유를 찾았더라는 이야기는 들은바 있지만 여자 혼자서, 안내인도 없이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던 해당국 난민관계자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겐 딸이 있습니다. 그것도 세 명씩이나요. 굶어죽게 된 자식을 세 명 씩이나 둔 엄마가 두려 울게 뭐가 있겠습니까.”

대한민국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자 혼자서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까지 왔다는 사실이 못미더웠는지 조사기관사람들이 여러 번 탈북 동기며 탈출경로를 물어보았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고 머리를 기웃거리기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제 소지품에서 나왔던 세 개의 금가락지는 같은 탈북자들까지도 저의 탈북행위에 의심을 품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제가 조사관이라고 해도 '장사밑천을 잡으려 중국으로 나왔었고 돈을 벌지 못해 3년6개월 만에 남조선으로 왔다‘는 말을 믿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더욱이 금붙이까지 몸에 지닌 사람이 안내인도 없이 중국과 라오스 등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저는 소지품 깊숙이 보관해 두었던 금붙이 몇 개를 들고 담당조사관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죽을 고생을 하며 단신으로 대한민국까지 왔는가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 드렸습니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 라고 입을 연 저는 손가방에서 물 낡은 사진과 편지 한 장을 꺼내 놓았습니다. 제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접고 한국행을 결심하면서 딸들에게 보냈던 편지에 대한 회신이었습니다.

어느 옛날에 찍었던 사진과 함께 큰애가 써 보낸 편지였는데 너무나 자주 읽어서 글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보풀이 인 편지였고 안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 엄마 보고 싶어요. 얼마나 보고 싶은지 엄마만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나요. 옥이는 벌써 아홉 살이 되었는데 혹시라도 엄마가 밤에 오면 어쩌는가 며 대문을 열어놓군 해요. 낮에는 우리 식구 모두가 밥 빌어먹으려 시장으로 나가기 때문에 엄마 말씀대로 문을 꼭꼭 잠그고 나가지만 돌아와서는 아무리 무서워도 문을 열어 놓는답니다.”

“. 그래도 엄마. 돌아와서는 안돼요. 며칠 전에도 3작업반에 살던 순이네 엄마가 중국엘 갔었다는 게 들통 나는 바람에 어디론가 끌려갔어요. 그래서 순이는 학교도 못 나와요. 매일처럼 울고 있는 순이를 보면서 난 차라리 지금처럼 우리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게 낳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옥이도 엄마가 보고 싶지만 감옥 가는거 보다 돈 버는게 더 좋다고 이야기 했어요. 그러니 엄마 우리걱정은 하지 말고 그곳에서 잘 지내세요. 꼭요!”

방안엔 침묵만 감돌았고 사진과 편지를 다시 가방에 담으며 저는 말했습니다. “원래도 그랬지만, 그 편지를 받는 순간부터 저는 남은 인생은 내 것이 아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내가 살고 애들이 사는 길은 여기 한국으로 오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라고 그 험난한 여정에 나를 위해 한 푼이라도 쓰게 될까봐 중국에서 벌었던 돈을 모두 여기 금붙이와 바꾸었구요”

이 작은 보물들을 꼭 사랑하는 세 딸애의 손에 끼워주리라 결심하고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1년은 중국에서 면식을 익혔던 교포여성과 함께 건설현장에서 철골을 나르는 등의 허드레 일을 했고 2년차에 접어들어서는 건설현장의 식당주방에서 그릇 가시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렇게 천만 원을 모아 애들을 데려올 ‘밑천’을 마련했습니다. 나를 기다리는 애들을 생각하면 하루 한시가 급한데 이렇게 벌다보면 언제 세 아이를 다 데려올 수 있을까 싶어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고 그래서 들어간 곳이 강남 어느 병원의 간병인 자리였습니다.

처음엔 환자와 생각하고 벌다 나사이의 소통이 문제였고 때로는 의사선생님의 지시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소통은 하면 되는 것이고 의사선생님의 지시는 반복해서 듣고 따르면 그만이었습니다. 남북한이 아무리 다른 제도라 할 지라도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인데 내가 무슨 별나라에서 왔다고 소통이 문제가 되겠는가고 스스로 자문하면서 말입니다.

환자들에게서 매일처럼 받아내는 대소변도 생각하기 나름이었습니다. 나는 나대로 아픈 사람을 돌보고 이런 순간들이 모여 딸자식을 데려올 기회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대소변이 그냥 대소변이 아니라 생명수처럼, 때로는 순금처럼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어느날, 월급 타는 날이라고 모두들 기뻐하는데 병동 한구석에 말없이 서있는 저에게 내가 담당한 환자의 부인이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가고 다정히 물어왔습니다.

아무생각 없이 “딸애를 데려오려면 아직 생각하고 벌다 돈이 부족해요”라고 대답하고 나서 하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데 다시 부인이 다가와 제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부족한데요?”

“3백 만원이요”
“그럼 어떻게 딸들을 데려오나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밤새 계속되었고 이튿날부터 저는 ‘북에 남겨두었던 세 딸을 데려올 작전’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제가 2년 반 동안 모은 돈에 엄마(생각하고 벌다 이후로 저는 부인을 엄마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그때까지 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요!)가 보태준 돈 3백만 원을 어느 브로커에게 생각하고 벌다 보내주었습니다.

꼭 6개월 만에 12살, 16살, 19살 먹은 세 딸이 꿈속에서처럼 저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하나원 면회실에서 엄마를 외치며 품에 안기던 애들 앞에서 그동안 참고 참아온 눈물을 마음껏 쏟으며 한 애 한 애의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워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애들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 내가정말 잘못했다. 에미가 되가지고 그 험한 세상에 너희들을 내 놓았었으니 정말 할 말이 없다. 영심아, 순희야, 옥이야! 엄마가 정말 미안해 응?! 용서 할거지?”

그러는 저에게 목을 꼭 그러안고 매달려 있던 막내 옥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났으면 됐어. 살아서 만났잖아. 돈 벌러 갔다가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치 언니?”

그렇고말고. 그렇고말고.
그 모진 세월을 견디지 못해 죽은 사람이 얼마고 헤어져 사는 사람이 또 얼만데.

죽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만난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몫까지 열심히, 그리고 죽기내기로 잘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에 우리 온 가족이 모여서 산 세월이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큰 딸애는 대학을 졸업하고 모 회사의 신입사원이 되었고 둘째와 셋째는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엄마의 도움으로 금융설계업체의 금융 강사가 되었습니다.

이 꿈같은 일들은 모두 우리의 조국인 대한민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오늘 우리 가정이 누리는 이 모든 행복역시 탈북민들에 대한 대한민국국민들의 각별한 사랑과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천지가 열백번 뒤집힌다고 해도 대한민국은 우리 가족의 조국입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간다는 긍지를 안고 내일도 모레도 열심히 살겠다는 약속을 드리며 여기서 저의 이야기를 마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2014년 12월 탈북민 이금순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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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벌다

함지현

컨센서스 2022 행사장 인근 바비큐 전문점에서 DESK로 맥주를 구매하는 모습/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 코리아

컨센서스 2022 행사장 인근 바비큐 전문점에서 DESK로 맥주를 구매하는 모습/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 코리아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컨센서스 2022에 현지 특별 취재팀을 보내 생생한 현장의 소식을 전달합니다.

특별 취재팀=함지현, 박상혁, 임준혁, 이다영, 이정배

코인데스크US가 발행한 DESK 코인은 '컨센서스 2022' 현장에서 수집한 후 이를 물건을 구매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DESK를 실물 토큰(DESK라고 적힌 물리적 동전)으로 교환한 후에야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진정한 가상자산 결제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특별 취재팀은 컨센서스가 열리는 오스틴 컨벤션 센터 내 현수막의 QR 코드를 스캔하거나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DESK를 수집해봤다.

DESK 토큰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선 주최 측이 사전에 발행한 ‘DESK 키’ 대체불가능토큰(NFT)가 있어야만 했다. 나는 개막 전에 미리 NFT를 받아놓은 덕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행사 중간에 NFT를 신청한 이들은 지갑에 NFT를 받는 데까지 하루 넘게 걸리기도 했다. NFT를 받으면, 일단 DAO 하우스에서 NFT 거래소 '오픈시'에 메타마스크를 연결하고 'DESK 키' NFT를 인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난 현장 스태프의 얼굴을 그려준 대가로 25 DESK를 받았고, 이외 부스 존에서 QR코드를 스캔하면서 총 975 DESK를 확보했다.

그렇다면 그 가치는 얼마일까?

주최 측에 따르면, 100 DESK의 가치는 현재 10달러에 달한다. 콘퍼런스를 즐겼을 뿐인데 97.5달러(약 12만4800원)를 번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 DESK를 상장한 거래소는 없다. 코인데스크US가 자체 다오(DAO, 탈중앙화자율조직)를 만들기 위해 발행한 토큰이기 때문이다.

DAO 하우스의 현장 스태프 얼굴을 그려주고 DESK 토큰을 받는 미션을 수행했다.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 코리아

DAO 하우스의 현장 스태프 얼굴을 그려주고 생각하고 벌다 DESK 토큰을 받는 미션을 수행했다.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 코리아

이렇게 받은 DESK로 행사장과 행사장 인근의 바비큐 전문점에서 음식을 사먹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이 다소 번거로운 점은 아쉬웠지만 말이다.

통상 가상자산 결제는 이를 지원하는 카드로 계산하고, 추후 정산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경우 이용자는 카드로 결제하면 끝난다. 하지만 DESK로 결제하기 위해서는 DESK를 실물 토큰으로 바꿔야 한다. 실물 토큰이 없으면 DESK 토큰 이용처에서도 결제를 지원하지 않는다. 결국 DSEK 이용처뿐 아니라 실물 토큰 교환처까지 찾아야 한다.

가까스로 교환처를 찾아 200 DESK를 내고 실물 토큰 2개를 받으려고 했다. 이번에는 네트워크 문제로 DESK가 전송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직원이 200 DESK를 받지 않고 실물 토큰 2개를 건넸다. 200 생각하고 벌다 DESK 에어드롭을 받은 셈이다.

실물 토큰 2개는 20달러의 가치가 있었다. 토큰 하나로 스테픈(STEPN) 주최 파티에서 맥주 한 캔을, 나머지로 행사장 매점에서 샐러드와 물을 구입했다.

실물 토큰으로 결제가 이뤄지다보니 굳이 DESK 토큰을 받지 않아도 어떻게든 실물 토큰만 구한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DESK 덕분에 행사를 좀 더 즐길 수 있기야 했지만, 열심히 모은 975개의 DESK를 컨센서스 출장 중 전부 사용할 수 있을지는 숙제로 남았다.

DESK 토큰 이용처에 쌓여있는 실물 토큰.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 코리아

DESK 토큰 이용처에 쌓여있는 실물 토큰. 출처=함지현/코인데스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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